8시50분 광화문. mompou의 음악을 들으며 찬바람을 맞았다. 바람은 어머니의 말처럼 그리 춥지 않았다. mompou의 음악은 새벽에 일어나 조심스럽게 발을 때는 걸음처럼 조심스럽게 느껴진다. 아니면 화창한 날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의 움직임 같다. 차가운 공기에 드러나는 수중기 먹은 입김 같다. 무엇이라도. 간밤에 문자를 받았고, 간밤에 문자를 보내고 꺼진 전화기 3대에 전화를 걸었다. 한대는 계속 신호가 갔으며 두대는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생각나는 이유는 너무나 사소한 것들이라 웃음이 나왔다. 너가 나를 볼 때 그 웃음. 거울 속의 나는 웃지 않았다. 지하철역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음악을 들었고 지하 8층으로 내려가면서 mompou의 피아노를 들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이유를 생각하지 않았다. 징후라는 단어를 생각하고는 살짝 웃었다. 모든 징후는 결과론적이다. 가지않을 것이다. 나는 갈 것이다. 필요한 것은 이유보다 옅은 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일차원적이다. 하나의 축밖에 없는 선형성. 출근하자 마자 잠이 들고 싶어졌고, 퇴근하고 싶어졌다. 바보라고 적었다. 올림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