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50분 광화문. mompou의 음악을 들으며 찬바람을 맞았다. 바람은 어머니의 말처럼 그리 춥지 않았다. mompou의 음악은 새벽에 일어나 조심스럽게 발을 때는 걸음처럼 조심스럽게 느껴진다. 아니면 화창한 날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의 움직임 같다. 차가운 공기에 드러나는 수중기 먹은 입김 같다. 무엇이라도. 간밤에 문자를 받았고, 간밤에 문자를 보내고 꺼진 전화기 3대에 전화를 걸었다. 한대는 계속 신호가 갔으며 두대는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생각나는 이유는 너무나 사소한 것들이라 웃음이 나왔다. 너가 나를 볼 때 그 웃음. 거울 속의 나는 웃지 않았다. 지하철역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음악을 들었고 지하 8층으로 내려가면서 mompou의 피아노를 들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이유를 생각하지 않았다. 징후라는 단어를 생각하고는 살짝 웃었다. 모든 징후는 결과론적이다. 가지않을 것이다. 나는 갈 것이다. 필요한 것은 이유보다 옅은 밀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일차원적이다. 하나의 축밖에 없는 선형성. 출근하자 마자 잠이 들고 싶어졌고, 퇴근하고 싶어졌다. 바보라고 적었다. 올림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아침 10시가 안된 시각, 길을 걸으며 생각을 했다. 찬 공기, 햇살, 그림자, 단풍이 든 나무, 눈부심. 나는 어떤 날,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렸고 누군가의 얼굴과 이름을 생각했다. 기억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남은 건 가라앉지 못한 부유물뿐이라, 걷던 길을 계속 걸었고 건물 안에 들어오니 모든 게 지난 일 같아졌다. 공기의 차가움, 살결을 스치던 기억들이 모두다.
할 말을 잃어버렸다.
markdown을 써서 글을 쓰고 있다.
아직 잘 모르겠다.
죄송합니다. 테스트입니다.
나의 친구는 이 때가 가장 좋을 때라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갑자기 영화 <권태>의 내용을 떠올리고는 내가 영화 속 주인공 같지 않을까 위안을 얻으려 책을 사서 보고 킥킥 거리지만, 걸을 걸으며 할 말을 곰곰히 생각하며 정리하지만, 또 다른 행동을 하면 그 생각은 날아가 버리고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른체 또 다시,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겠지. 어려운 일이다, 참말로.
견물생심
권태라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너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면 어디로 가도 괜찮다는 체셔의 말을 떠올린다.
어디로 가고 있을가?라는 질문은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 하게 된다. 그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니까.
잠을 자다 꿈을 꾸다, 아침에 일어나니
생각나는 것은 편지를 써야겠다는 것 뿐이다.
꿈은 기화되어 다시 어디에 흡착되었까.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판을 돌리고, 세수를 했다.
이른 점심이길래, 이런 저런 일을 하다
광화문에 가서 <도약 선생>을 보고 잠시 길가에 앉아서 카프카의 책을 읽었다.
서점에 가서 몇 몇 책을 뒤적거리다가, 집에 쌓아둔 책이 많음을 떠올리고 집에 왔다.
집에 도착하여, 땀을 닦고
양파와 마늘, 카레가 들어간 볶음밥을 해먹고
고구마향이 나지 않는 에디오피아 코케를 마셨다.
일상적으로 별다른 일이 없는 하루인데,
많은 생각이 떠올랐으며
관계에 있어서 내가 잘하고 있었는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우울은 잠시 머물렀으며,
여전히 한 지점에 있지만, 형광등을 끄고 국믹학교 때 부터 쓰던 스탠드를 켰다.
해야할 말은 아끼는 편이 날 것 같았고
지난 밤에 쓴 문자나 메일과 같은 것은 다 지우고 싶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고
너에게 물어본다.
답을 하던 시간은 지나갔다.
남은 것은 나에 대한 스스로 들을 대답뿐.
나는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눈은 빠르게 돌아갔고
범사에 마음이 떨렸다.
다시 네게 물어보고는,
지붕을 올리는 아파트 공사 현장을 보았다.
시야는 새로 올라가는 욕망에 가려졌다.
